저기요, TV 화면은 왜 구부렸나요?
기술의 발전이야 뭐가 됐든 고마운 일이다. 특히 디스플레이의 크기와 해상도는 다다익선이다. 클수록, 높을수록 좋다. 하지만 극에 달한 디스플레이의 발전과 함께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성큼 다가온 UHD 디스플레이
올해 CES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가 UHDTV다. '4k TV'라고도 부른다. 가로 해상도가 4000픽셀에 육박하는 해상도를 일컫는다. 보통은 가로폭에 3840개의 픽셀을 집어넣는, 이른바 고해상도 TV다. 우리가 흔히 구입하는 풀HDTV보다 4배 더 많은 픽셀로 화면을 표현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가져온 변화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더 크게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었던 TV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해상도 전쟁이 열렸다. 지난해에도 UHDTV는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이 해상도의 디스플레이가 우리 곁에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TV 1대에 수천만원씩 나가는 가격은 대부분 사람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으니까.
올해는 현실적으로 눈높이를 낮춘 제품들이 선보였다. 폴라로이드는 50인치 4k TV를 999달러에 내놓았고, 델도 28인치 4k 모니터를 699달러에 선보였다. 풀HD 디스플레이에 비하면 비싸지만, 이제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도전해볼 수도 있는 가격까지 내려왔다. 이제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가 경쟁의 주요 포인트가 됐다.
기술자랑은 다른쪽에서 맡는다. OLED와 커브드(휜) 디스플레이다. OLED TV는 LCD에 가려 있었지만, 수년 동안 CES의 단골손님이었다. 2007년 11인치에서 시작한 OLED는 당시 대형화가 쉽지 않다는 예상을 깨고 이제는 UHD 해상도에 LCD 수준의 대형화도 이뤄냈다. 더 크고 밝은 디스플레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높아진 해상도는 뭘로 채우나
문제는 이 해상도를 채우는 일이다. 현재 HD방송에 비해 물리적으로 4배 많은 픽셀을 동시에 전송해야 한다. HD방송의 경우 공중파 전송 포맷과 함께 디스플레이가 나왔지만, UHD는 아직 전파를 통한 방송 송신 계획이 불투명하다. 현재 UHD방송 전송은 몇 가지 안이 나와 있지만, HEVC 코덱으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이 코덱은 압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정보가 4배로 늘어나는 만큼 전송이 만만치 않다.
현재 HD방송도 전송률이 넉넉하지 않아 화면이 빨리 움직이면 깨지는 부분이 생기는데 UHD를 이대로 전송하긴 어렵다. 더 많은 대역폭을 써야 하는데 주파수를 더 할당하는 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적인 흐름은 위성이나 케이블, IP망 등을 이용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자칫하면 오버스펙으로 분류돼 일부 마니아들을 위한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3년 전만 해도 제조사들사이에 험한 소리까지 오가며 치열한 경쟁을 했던 3DTV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블루레이는 4k 콘텐츠를 채우기에 부족하다. UHD 미디어 자체도 스트리밍과 주문형 콘텐츠 방식으로 제공되는 분위기인데, 관련 인프라가 별로 없다. 콘텐츠를 찍고 편집하기는 만만찮은데, 수요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현재 그래픽카드가 4k 해상도를 제대로 뿌려낼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일반적인 그래픽카드는 2560×1600 정도의 해상도를 낸다. 3840×2160 급의 4k 해상도를 내려면 HDMI 1.4나 DP 1.2 포트로 출력하는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4k 해상도에서 게임을 돌릴 정도의 그래픽카드 성능도 요구된다. 4k 수요가 다시금 고성능 PC시장의 발전을 이끌 수도 있지만 이용자들이 현재 풀HD급에 만족할 가능성도 있다.
걱정되는 대목은 또 있다. 4k도 과도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UHD 규격 안에는 8k 해상도도 검토됐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가격을 비롯해 콘텐츠 등 조건들 때문에 4k 위주로 시장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게 요즘 분위기다. 1920×1080 해상도의 HD 규격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1366×768의 HDTV가 스쳐지나가듯, 4k도 그렇게 잠깐 왔다 지나가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왜 구부렸는지 알려주오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커브드 디스플레이다. 필름에 디스플레이를 성형하는 커브드 OLED 뿐 아니라 LCD 패널을 휜 모니터와 TV가 잇달아 선보였다. 스마트폰에서도 그랬지만 삼성과 LG는 “우리 디스플레이 이만큼 구부렸어요”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소비자들은 묻는다. “왜 구부렸어요?” 제조사들의 답이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진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정도의 답만 돌아온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기술 자랑을 위해 구부린 것인지, 필요에 의해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낸 것인지가 모호하다. 굳이 용도를 찾아보자면 PC에 여러 대의 모니터를 연결해 게임을 한다면 비행기의 콕핏에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일반적인 용도에서는 굳이 디스플레이를 구부릴 이유가 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디스플레이 업체 내부에서도 ‘기술 과시용’이라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당연히 이 디스플레이들이 실험만을 위해 개발한 건 아니다. 휜 스마트폰처럼, 이 TV와 모니터들도 곧 시장에 나온다. LCD가 나오기 직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안쪽으로든 바깥쪽으로든 휘어 있는 것은 왜곡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슈로 화면을 편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일었던 게 디스플레이다. 가장 평면일 수밖에 없는 LCD 화면 대신 구부러진 화면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는 뭔가. 디스플레이 업계는 이 과제를 풀어야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술의 발전이 반갑긴 하지만 그에 따르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게임기나 PC는 이제서야 풀HD 해상도로 게임을 원활하게 돌리기 시작했고, HD방송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첨단 기술에 대한 생색은 냈지만 실속은 스스로가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기술을 받아쓰는 다른 업계가 챙길 수 있다. 필요에 의한 기술 개발 경쟁, 재미있긴 하지만 ‘왜’라는 의문과 ‘어떻게’라는 걱정이 공존한다.
최호섭 기자 allov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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